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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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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자유시장미국 경제

05/01/2018

[Translated by Haeng-Bum Kim]

몇몇 기독교 공동체의 분파, 특히 네덜란드에서 연원한 개혁파 기독교도들에게는 오늘날의 세속 노조의 대안으로 기독교식 노조를 창설하는 것에 대한 상당한 지지가 있다. 개혁파 기독교파들을 제외하면 교회 안에서 이 일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한 두 종파, 특히 제칠일안식재림교회(Seventh Day Adventists)에서는 교인들로 하여금 노조에 가입 말도록 권유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노조 문제가 교회가 공식적인 입장에서 논의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노조는 흔히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전체 미국 노동인구의 주요 부분이 아니다. 그들은 자동차, 철강 및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대기업들에선 중요하지만 미국 노동자의 대략 25%만이 어떤 노조에든 가입해 있고, 이들 중 많은 것들은 취약하고 대단치 않은 조직들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노동조합주의가 민주국가에서 전국 노동자의 과반을 장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노조가 이 과반을 장악한다면 노동이동성(labor mobility)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노조는 임금을 올리는가? (누구의 임금을? 어떻게?)

두 말할 필요 없이 그렇다. 독점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가? 두 말할 필요 없이 그렇다. 노조는 독점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것과 똑 같은 방법으로 임금을 올린다. 즉, 특정 자원의 공급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곤, 어떤 독점자도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 없이는 이런 식으로 가격을 올릴 수는 없다. 만약 정부가 경쟁자들을 몰아내어 준다면, 독점자는 자유시장 하에서 받았을 경우보다 더 높은 가격을 수년 혹은 수 십 년간 유지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의 경우 드비어스(DeBeers)의 과점 상태는 20세기 동안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계속 올려놓았지만, 이러한 독점을 유지하는 데는 남아프리카 정부와의 공모가 있었다(혹은 적어도 시초에는 그런 공모가 있었다).

오늘날 모든 노동조합주의의 토대가 되는 것은 독점에 의한 가격설정(monopoly pricing) 경제학이다. 이 점을 노조 지지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신들은 몇 날을 찾아봐도 노조의 지지자이면서 동시에 기업 독점의 지지자인 사람들을 찾지 못할 것이지만, 사실 이 둘의 경제 원리는 같은 것이다. 노조는 비노조원을 일자리 구하기 경쟁에서 배제함으로써 노조원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바꾸어 말하면, 배제되는 사람들은 최선이 아니라고 여기는(second-best) 직업에서만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노동시장에서 비용을 가장 많이 부담하는 사람들이다. 즉, 그들은 시장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누리는 노조 안 사람들을 위해 가장 무거운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노조는 경쟁 과정에서 비노조원들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는가? 여러 방식들이 있는데 그 모두는 노조가 수 십 년간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첫째, 생경한 폭력이다. 그 경쟁자들을 두들기는 것이다. 그들은 페인트 폭탄(페인트를 채운 종이 백)을 경쟁자들의 집에 던진다. 경쟁자들의 아이들을 위협한다. 노조원의 아이들은 경쟁자들의 아이들이 학교(국공립학교)에서의 사회적 활동들을 못하게 막는다. 그들은 피켓을 든 대열에서 파업을 깨는 사람들에게 “배신자”(scab)라고 소리친다. 그러면서도 노동조합을 옹호하는 자들이 소위 ‘GM의 독점’에 맞서는 포드 자동차의 세일즈맨에 대해서는 결코 배신자라고 소리치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둘째, 이것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데, 노조주의자들이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과반수 노동자들이 공장, 산업 및 직업부문에서 특정 노조를 유일한 교섭주체로 선택할 때에는 비노조원인 노동자들은 교섭에서 배제되게 하는 법을 만들도록 설득해온 것이다. 처음에는 전문직업 단체들이 그러한 주(州) 입법들이 통과되게 만들었는데 특히 변호사, 내과의사 및 치과의사들이다. 그 후 1935년 와그너법(The Wagner Act)이 전국 수준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으로 전국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가 설치되었는데 그것은 친노동조합적인 관료주의적 연방기관이다. 원하는 한 노조만이 유일 교섭주체로 인정받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노동자의 75%가 잠재적인 “배신자”들이며, 전국노동관계위원회는 그들 대부분을 그들에게 최선이 아닌 직업 속에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이다.

셋째, 노조가 독점을 이용하여 가격을 책정하는 수단으로 눈에 잘 안 드러나는 다른 게 있다. 최저임금법이 그것이다. 이 입법은 최저임금보다 항상 더 높은 임금을 받는 노조 임원들에 의해 늘 지지받고 있다. 이 법 때문에, 노조화가 덜 진행된 남부와 같은 지역(사실, 주로 이 남부 지역이 해당된다)이 노조화가 아주 많이 진행된 북동 지역으로부터 기업을 쉽게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이차대전 후 최근까지 노조가 노조원이 아닌 노동자들과 싸우는 주된 투쟁 수단이었다. 아마 아직도 주된 무기일 것이다. 물론 그 싸움에 대한 주된 패배자는 도시의 십대 흑인 남자들인데, 그들은 북부지역의 노조에 들어 갈 수 없으며, 남부지역으로 쉽게 이주할 수도 없거나, 최저임금을 받을만한 노동서비스를 고용주에게 제공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화되면 고용주는 시장에서 정해지는 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한다. 물론, 노조 지배에서 벗어나 있는 고용주는 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노조화된 기업으로부터 노동력을 구입하도록 경쟁적인 시장 세력에 의해 구속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75% 이상의 노동자들은 노조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25%의 노조화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노동시장에 합법적으로 들어 갈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어딘가에서 일해야 한다. 따라서, 노조화되어 있지 않은 사업체의 고용주는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셈인데, 즉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는 것이다.

노조 지지자가 노조가 기막히게 좋은 이유가 75%의 미국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들에게 보조금을 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들어 본 것이 언제였던가? 그러나 바로 이것이 정부가 시행하는 강제적인 노조주의의 경제적 효과이다.

시장 경쟁의 법칙

“구매자들은 다른 구매자들과 경쟁한다. 판매자들도 다른 판매자들과 경쟁한다.” 이 말은 그리 어렵지 않은 개념으로 보인다. 그런가? 그러나 자유 시장에 대해 정부 간섭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주장들에 따라 판단한다면 그것은 경제학에서 아주 어려운 개념이다.

노동력의 구매자는 다른 구매자들 및 유사한(대체가능한) 노동의 잠재적인 구매자들과 경쟁한다. 이는 고용주들은 노동시장 속에 있는 다른 고용주들과 끊임없는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는 의미이다. 고용주들은 더 이상 고용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노동 가격(임금)을 제시하며 노동 구입의 경매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데, 가장 성공적으로 노동을 경매한 고용주라면 그것은 다른 경쟁자들이 다 퇴장할 때까지 경매에 남아있는 것이다.

노조화가 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들이 노조화된 기업 안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법이 금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결국 노조는 거기서 배제된 비노조 노동자들로부터 노동을 구입하는 비노조화된 기업체들에게 보조금을 주고 있는 것과 같다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노동조합이 장악한 기업의 노동 구매자는 75%의 미국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에 대해 가장 높은 가격을 주는 사람에게 노동을 제공하려는 “노동 경매”(labor auction)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노동의 판매자들은 판매자들끼리 경쟁한다. 이는 노동조합주의로 피해를 보는 노동자들은 노조원 자격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어느 경제 부문에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이 노동을 판매하는 경매에 나설 권리가 부정되는 것인데, 이는 노조화된 시장에서 고용주들이 노동 구입 경매에 나설 권리가 부정되는 것과 꼭 같다.

노동에 대한 성경적 시각

인간에 대한 성경적 시각은 노동 지향적이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고(창세기 1:26) 단언한다. 인간이 땅 위에 존재함은 그것을 정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창세기 1:28-; 9:1-7). 인간은 하나님 중심의 노동이란 관점에서 자신을 정의해야 한다. 의심할 바 없이, 강제적인 노동조합은 두 집단이 -노조화된 기업에서 노동을 구입하는 자들과 노조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 받지 못한 채 노동을 판매하는 자들- 이 문화적 책무를 완수할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노조원들에 의해, 혹은 그들이 경매에 나설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하는 정부에 의해 강제 조치가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법”(노동권법 right to work laws)이란 말은 1940년대 초에 나온 말이며, 이로써 반(反)노조주의 세력은 효과적인 무기를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경제학에서 보면 그것은 정당한 개념이 아니다. 노동은 각 사람의 권리가 아니다. 노동은 사람의 의무이다. 그의 정당한 권리란 그가 원하는 일자리를 두고 경쟁에 나설 수 있는 권리, 혹은 그가 구입하기 원하는 노동을 두고 경쟁에 나설 수 있는 권리이다. “경쟁에 나설 수 있는 법”(경쟁권법 right to compete law)이라 하면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로 볼 때와 같은 정치적 호소력은 없어진다. 경매에 나설 권리(right to bid)란 말은 그것보다도 효과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옹호해야할 것은 바로 이 권리이다. 어느 누구도 내 일자리에 대한 권리가 당연히 있는 것이 아니며,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든지 내 일자리를 두고 경쟁에 나설 권리를 가져야 하며, 거기에 나도 포함되며, 나는 또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두고 경쟁에 나설 권리가 있는 것이다.

파업

현재의 법을 감안하면, 파업은 절대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이다. 파업자들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를 고용한 사람은 그들을 대체할 누군가를 고용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강제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가 자신의 고용주를 위해 노동하기를 거부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일자리를 그대로 소유한다는(다른 사람들을 그 자리에 고용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완전히 부도덕한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도덕성에 욕먹을 짓까지 더해, 대부분의 노조원들은 정부의 식료품교환권(food stamp), 실업 관련 혜택들(비과세), 그들이 파업하는 동안 납세자들의 돈으로 충당되는 여러 가지 다른 혜택들도 요구한다. 소비자는 파업자 개인의 장례식에 돈을 대어야 하며, 사법(私法)의 강제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기를 원하는 모두가 노조 안에 들어 있다면, 노조 내의 어느 누구도 독점적인 임금을 받지 못함은 분명하다. 그 경우에는 노조는 경제적으로 불필요할 것이다. 노조원들이 그들의 독점적 이득을 얻는 것은 오직 비(非)노조 노동자들에 대해 설정된 인위적 장벽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현재의 강제적 형태의 노조운동은 ‘소수운동’(*역자 주: minority movement. 1920년대 영국 공산당이 조직한 프롤레타리아 이익 옹호를 위해 나타났던 급진노조운동)에 불과할 것이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노조는 노조 운동권 밖에 있는 다수의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는 노조가 그들의 독점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 계급 중에 희생자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발적 노조

인간은 그의 계약이 만료되면 그가 원할 경우 일자리를 떠날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는 그의 고용주가 다른 사람을 채용하는 것을 막을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고용주는 노동 계약이 만료되면 노동자를 해고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 노동자가 다른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고는 것을 막을 권리를 가져서도 안 된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권리들을 침해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빌립보서 2:17)을 막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문화적 책무를 완수하는 권리(창세기 1:28; 9:1-7)가 있음을 부정한다.

시민 정부가 고용자 및 노동자에 의해 합의된 계약을 이행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서는 안 되는 한, ‘자발적’ 노동조합주의가 정당한 것이다. 노조는 다른 곳에서 더 나은 임금이나 나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가에 관한 정보를 보급하고 그것을 통해 노조원들이 자신들이 판매하고자 하는 노동 서비스의 진정한 가치에 주목하도록 도울 수 있다. 노조는 자조(自助 self-help)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강제적 사법(私法)체제 하에서 의무적인 것이 될 때에는 그것은 비도덕적인 것이다. 정통의 기독교도들에겐 그렇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자유시장 원리를 해석하는 경제사학자. 『미제스의 화폐론』(2012), 『정직한 돈: 화폐와 은행제도에 대한 성경적 원리』(1986) 등의 저자이며, 성경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제시하고 있음을 밝힌 31권으로 된 『성경에 대한 경제학적 주석』의 저자이기도 하다. 더 깊은 내용을 위해서는 페트로(Sylvester Petro)교수의 『노동 정책과 자유사회』, 『무한 권력: 노조지도층의 부패』 등을 참조하라.


Haeng-Bum Kim is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Pusan National University, Korea. Mises.kr

The article in Korean can be read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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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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